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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전공인력 태부족 기초의학계 돌파구는 없나-한국의학 미래 열쇠

[집중취재]전공인력 태부족 기초의학계 돌파구는 없나-한국의학 미래 열쇠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1.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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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학 미래 열쇠' 인식부터


최근 의대 졸업생 한 명을 대학원생으로 받는데 성공(?)한 A대학 해부학교실은 한 동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다른 기초의학 교수들은 “정말 경사났다”며 부러운 찬사를 보냈다.
한 기초의학 교수는 “기초의학전공자를 확보하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 졌다”며 “이대로 가면 한국 의학의 미래가 암울할 뿐”이라고 탄식했다.

기초의학계가 직면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은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의학 전공자 중 대학원에서 기초의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인력은 2001년 현재 41개 전체 의과대학을 통털어 40명 안팎. 그나마 여건이 좋다는 전통 있는 대학도 잘해야 1년에 2∼3명을 확보하는 정도이며, 대부분 전공 인력 확보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과학기술부는 지난 10월 `기초의과학 육성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 이어 12일 `기초의과학육성종합계획' 공청회를 여는 등 총체적 위기에 빠진 기초의과학계를 살리기 위해 팔을 걷었다. 공청회가 열린 서울의대 강당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의과학자들이 참석, 과기부의 종합계획안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과기부는 기초의과학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생명과학의 핵심 분야라는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이번 종합계획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만큼 이번 계획안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기초의과학계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연구개발 관련 예산의 대부분을 공학이나 자연과학에 편향적으로 지원해 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연구개발비 예산의 34%를 보건복지 분야에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은 2%에 불과한 실정이다. 연구개발비의 성격도 개발연구비와 응용연구비에 87.4%를 지원하고 있는 반면 기초연구비는 12.6%에 머물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과기부가 기초의과학 육성을 위해 2006년까지 약 1,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은 무척 고무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과기부가 제시한 기초의과학 육성의 기본 방향은 의대 치대 한의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인력들이 기초의과학에 많이 진출하도록 하고, 이들에게 충분한 교육 연구의 기회를 제공하며, 기초의과학을 통해 양성된 인력과 연구결과가 BT분야에서 활용되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 기본 방향은 크게 인력양성, 연구개발, 결과활용의 세부분으로 압축된다. 기초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고등학교에서부터 석박사 학위취득 후까지의 인력양성의 전과정에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마련하고, 기초의과학 연구활동 저변을 확대, 핵심분야는 거점 연구기관을 육성하여 연구개발자원을 집중 지원하며, 기초의과학부문에서 훈련된 고급연구인력과 연구결과를 생명공학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체제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기본방향의 주요 골자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수차례에 걸친 간담회와 전문가회의를 통해 제기된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기초의과학계 전문가와 관계 부처 실무자로 구성된 기초의과학육성협의회(위원장 조수헌·서울의대 교수)의 기획연구안을 기초로 마련한 기초의과학 육성 종합계획안이 발표됐다. 협의회는 이날 기초의과학 육성을 위한 다섯가지 세부 시책을 선보였고, 초청토론 연자들의 보완대책과 방청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반영, 최종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협의회는 최종안을 21일 열리는 제 9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에 상정, 국가 계획으로 최종 확정하고 2002년부터 본격 추진한다는 포석을 세워놓고 있다.

홍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스타 의과학자를 발굴하여 청소년 및 일반 국민들이 기초의과학의 중요성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의·치·한의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창구를 개설하여 진로, 연구, 유학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기초의과학 분야의 문을 바로 찾을 수 있게 하겠다는 안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했다. 공청회 참석자들은 기초의학의 중요성에 비해 국민적, 사회적 인식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기초의학이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 수긍했다. 기초의학이 21세기 중심과학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기초의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와 함께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른 학문 분야와의 형평성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기초의과학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고심했다. 하지만 기초의과학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생명과학의 핵심임에도 국민적 인식은 물론 국가의 정책적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며 인식 제고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초의과학 전공자에게 전문연구요원 자격과 병역특례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지원자를 늘려보겠다는 계획도 이미 자연계열 전공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 따라서 병역관계법령 개정도 순조롭게 추진될 것으로 보이며, 빠르면 내년부터 기초의과학 부문의 박사 과정이나 내년부터 신설되는 MRC(Medical science and engineering Research Center) 및 생명공학 관련 출연연구소, 국공립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 등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여기에 학부생들의 인식제고를 위한 실습 프로그램, 대학원생 지원을 위한 장학금 및 생활비 지원, 신진 연구인력에 대한 국내외 연수 지원, 기초의과학 국가교수제, 기초 교수인력에 대한 파견 및 해외연수 지원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초청토론자들이나 방청객들은 기초의학 전공자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세부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각자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

해부학자의 꿈을 접고 다시 이비인후과학을 전공, 임상으로 방향을 전환한 경력이 있는 김창석 원장은 과중한 업무와 연구를 병행할 수 밖에 없는 조교 근무 당시의 어려움을 회고하며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인력들이 의욕을 갖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주니어 리서치 펠로우 십과 같은 지원과 배려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기초 분야를 전공하면서 결혼 생활하는 것 자체도 어려웠다”며 학문과 생활을 병행해야 했던 당시의 어려움도 토로. 김 원장은 “기초 교실에서 연구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의대생이나 의사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대에서의 홍보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석용 교수(성균관대 약학대학)는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면 병역을 면제한 후 기초교실에서 5년간 연구토록 하는 것이 연구의 성과측면에서 바람직하다”며 “장학금 지원보다는 연구비 지원으로 가닥을 잡아야 타 대학의 반발이나 거부감을 해소할 수 있다”고 나름의 방안을 제시.

김유삼 교수(연세대 이과대학)는 “병역특례, 의대생 실습 프로그램, 대학원생 지원 등이 모두 이뤄진다 해도 임상에서 기초로 지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초 의과학자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때 기초의학을 전공하려 경쟁을 하게 된다”고 지적. 김 교수는 특히 학부에서 연구 경력이나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발해야 기초의과학 지원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MD+Ph.D 복합과정을 조기에 시행하고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펠로우십 지원 등을 통해 독자적인 연구를 장려해야 한다고 강조, 눈길을 끌었다.

공청회 참석자들의 질의가 돋보인 종합 토의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기초의과학 육성 방안이 쏟아져 눈길을 끌었다.

엄융의 교수(서울의대)는 대학평가, 연구비 지원, MRC 지원 요건에 기초교실 교수 수를 주요평가 항목으로 배정하여 기초의과학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엄 교수는 분자, 세포, 장기가 아닌 인간 전체를 볼 수 있도록 기초의과학의 새로운 연구방향이 설정돼야 한다며, 기초교과 과정에 BT와 IT 통합과정을 개설하는 등 기초의과학계 내부에서도 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일 교수(연세의대)는 국제적인 공동 연구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조사선 교수(서울의대)는 외국 연수 프로그램 지원을 통한 국제화를 강조, 주최측으로부터 종합계획안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기초의과학 육성 종합계획안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과 기초의과학의 중요성에 비례하는 지원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참석자들은 이번 종합계획안을 계기로 실용성과 수월성 위주의 정책에서 탈피, 기초의과학이 바로 설 수 있는 초석을 다져야 한다고 중지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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